내안의 필름 2009. 11. 14. 23:38

'여행자' Une vie toute neuve



마침내 포스터 한 장을 올리긴 하는데..  
이 영화에 대해선 거의 나오는 대로 글을 써내려갈 수 밖에 없을 듯하다.
하긴 내가 쓰는 리뷰가 거의 다 그렇긴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70년대 중반, '여행을 떠나듯' 아빠의 손에 이끌려 가톨릭계 보육원에 맡겨진 아홉살의 여자아이가 프랑스라는 먼 곳으로 입양을 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채 열 살도 안 된 어린 아이에게 일어난 갑작스러운 이별과 사랑하는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의 그 지난한 확인들, 그리고 죽음과 삶의 경계선까지 치닫게 되는 지독함까지도 담담하게 보여준다.  아이는 왜 자기가 고아원에 있어야 하는지 이해 하지 못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님이 안 계신 것도 아닌데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한다. 아빠가 꼭 자기를 다시 찾아 올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보육원의 아이들과 자기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빠는 오지 않는다. 보육원의 큰언니와 아이들이 밤새 화투놀이를 하는 도중에  화투패를 본 아이가 "손님이 오셨네" 한다. 다른 아이가 진희를 지목하며 "새로 들어온 아이처럼? " 하고 묻자 큰언니는 "그 앤 손님이 아냐 우리와 같이 살거거든" 하고 대답한다. 자기는 손님이라고 여기던 진희는 그 소릴 듣고서야 비로서 여느 아이들처럼 이곳에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느날 신체검사를 하는 와중에 의사 선생님이 진희에게 "왜 여기에 왔는지 알고 있니" 라고 물었을때  아이는 거의 울먹이면서 "아기 때문에" 그런거 라고 대답하는데 이유인 즉 언젠가 동생인 아기를 안아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아기가 울었고 그 통에 엄마 아빠가 달려와서 보니 아기 발에 옷핀이 찔려서 피가 났었다고 말한다. 부모님은 옷 핀 땜에 아기가 죽을 뻔 했다고 생각한거다 라고 대답한다. 그러니까 진희는 아빠가 자기를 고아원에 데려 온 이유가 있을거라고 골똘히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과 옷핀은 아무런 관련도 없음에도 그 일때문에 고아원에 버려진 거라고.. 그렇게 해서라도 어떤 타당한 이유를 찾아 내고 싶었던 것일까?




시간이 지나며 진희는 보육원에서 알게 된 숙희언니와 친해지고 차츰 정을 붙여간다. 두 아이는 같은 곳으로 함께 입양을 가기로 약속까지 하지만 숙희는 훌쩍 혼자서 미국인 부부를 따라 고아원을 떠난다. 아이들이 입양을 떠날 때마다 의식처럼 치뤄지는 고별식에서 부르던 노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그리고 노래의 후렴구, " 그 속에서 놀 던 때가 그립습니다"
뭐가 그리 그리울까? 이곳을 떠난 아이들이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까? 모든 아이들을 공평무사하게만 대하던 이곳을?  누군가에게 특별히 사랑받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없는 이곳을? 아니면 남아 있는 아이들이 먼저 떠난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그리워할까? 어느쪽이건 진희에겐 남아 있는 그리움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거구나,  이렇게 또 날 홀로 남기고 떠나는구나. 같이 있고 싶은데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거구나 라는.. 고된 학습뒤에  깨달은 체념섞인 분노외엔.  

숙희가 떠난 후 진희는 더 말이 없어진다. 외국에서 보육원에 선물로 보내준 인형들을 줴다 망가뜨리고 매사에 반항적이 되간다. 그리고 예전에 숙희언니랑 같이 돌봐주던 새가 죽었을때 묻었던 자리를 찾아가 그 자리의 흙을 퍼 내고 자기 몸이 들어갈 만한 웅덩이를 만든다. 그 자리에 들어가 흙을 덮고 스스로를 매장한다. 그렇게 해서 숙희와의 기억을 묻어버린다. 아니 아빠에 대한 기억과 그 이전의 삶들과 이별을 고한다. 



그리움과 배신감, 기억과 잊어버림, 버림받음과 거둬짐, 그런 일련의 깨달음으로 굴곡지고 비틀려진 시간들을 뒤로 하고  아이는 이제 받아 들이기 시작한다. 원장선생님은 진희에게 먼 외국에서 보내온 양부모의 사진을 보여주며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 "무섭게 생겼어요" "하지만 좋은 분이시란다. 너에게 잘 해 줄거야"  파리로 떠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진희의 목에는 입양하는 아이에게 걸어주는 증명서가 걸려있다. 아이는 이제 먼 여행을 떠난다. 파리에 도착한 아이는 대기실에 기다리고 있는 양부모를 향해 걸어간다. 그때의 진희의 표정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자신 앞에 놓여진 새로운 삶 앞에서 자신은 오직 '여행자' 일 거라는 사실과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여행은 계속된다는 것과 더불어서..



*
'여행자'는 우니 르콩트(Ounie Lecomte)라는 한국계 프랑스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그녀는 1970년대 9살의 나이로 프랑스로 입양을 가서 성장했다. 그녀의 본명이 은희 라고 들었는데 아마도 은희라는 이름을 불리는대로 옮기다보니 우니(ounie)가  된 것이 아닐까 라는 추측을 해 본다.



**
진희 역을 맡았던 김새론 이라는 어린 배우에 대해서 한 마디 안 할 수 가 없다. 그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와 어른들도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면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상황들을 그 정도로 소화하고 표현할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지만 저걸 힘들어서 어찌 촬영했을까? 라는 걱정 반 감탄 반을 하면서 열살 남짓한 이 배우가  '여행자'에서 보여준 것은 배우고 익힌 것이라기 보다는 거의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