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어떤 특정한 장면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 한 컷만으로도 영화의 의미와 흐름을 유추할 수 있을만큼 상징적이라서, 혹은 평범해 보일지라도 시선을 끌만한 구석이 있어서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고 싶을때가 있다. <굿 바이 칠드런>의 이 장면은 거의 후자에 속할것이다. 더불어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 이 오버랩 된다는 점에선 전자에도 해당된다.
중학교의 피아노 레슨시간, 줄리앙은 피아노를 치면서 자꾸 음이 틀리고 선생님에게 걱정스런 소리를 듣고 나간다. 그 뒤에 들어온 보네는 앉자마자 악보에 맞춰 완벽하게 슈베르트를 연주한다. 선생님은 점점 놀라와 하며 흐믓한 표정으로 보네를 바라보고 줄리앙역시 놀라지만 한편으론 재수없는 녀석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동급생인 이 두 아이들은 아직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기 초 전학 온 보네에게 줄리앙은 호기심을 느끼지만 말 수가 적고 범생이같은 그가 조금은 어렵다. 기숙생활이다보니 자주 마주치고 친해 질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있었는데도 두 아이들은 좀체로 서로의 거리를 줄이지는 못한다.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들이란 주먹다짐을 하다가고 금새 풀어지고 사소한 일로 상대방을 거슬리기도 하는 법이니까. 보네와 줄리앙의 관계역시 그런식으로 매번 틀어지곤 한다. 피아노 연주가 서툴러서 자꾸 잘못 치는 음처럼 그 둘의 사이도 그때까지는 그랬었다. 마음이 쓰이고 끌리는데도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뭔가가 자꾸만 어긋나는 사람들처럼.
영화의 후반부엔 또 다른 피아노 연주장면이 나온다. 피아노 연습을 하던 두 친구가 어느 순간 마음이 맞아서 같이 신나게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다. 두 사람의 표정도 모처럼 밝고 구김이 없다. 마침내 한 발자국 서로에게 다가섰구나 하는 그런 느낌을 주는 장면이었다.
몇 년 전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감독겸 시나리오를 쓴 루이 말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고백하면서 책표지에 쓴 글이 있다. 그 글을 옮겨보는 것으로 이 영화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를 대신하고 싶다.
유년기에 대한 한 영화인의 기록과 헌사
『Au revoir les enfants』은 내 유년시절중 가장 비극적인 추억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1944년 나는 열한살이었고 퐁텐느블로 근처의 카톨릭계 중학교의 기숙생이었지요. 그런데 그 해 연초에 학교에 들어왔던 동급생들 중 한 아이에게 무척이나 마음이 쓰였었어요. 그 앤 뭔가 달라보였고 또 비밀스런 구석이 있어보였거든요. 어느날 아침, 우리의 작은 세계가 무너져 내리던 날 그 친구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시작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1944년 그날 아침이 어쩌면 영화인으로서 나의 소명을 결정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 변함없는 사랑이었고 신원보증서나 다름없었지요. 그것을 내 첫번째 영화의 주제로 삼았어야 했을 겁니다. 그러나 난 망설였고 또 기다렸어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갔지요. 추억은 더욱 첨예해졌고, 보다 현재에 가까이 다가왔어요. 미국에서 십여년을 보낸 후, 작년에야 그 순간이 왔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Au revoir les enfants』의 시나리오를 집필했습니다. 상상력이 기억안에서 점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재구성하는 것을 넘어 여전히 마음이 아프고 동시에 시간을 초월한 하나의 진실을 찾아 과거를 재발견한 것이라고나 할까요. 나와 닮은 그 어린 소년의 시선을 통해서 가장 강열했으나 갑자기 부서져버린 그 최초의 우정을, 그리고 폭력과 편견으로 얼룩진 부조리한 어른들의 세계를 다시 찾아내고자 했으니까요. 1944년은 멀리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의 여느 청소년과 내 이런 심정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루이 말
루이 말은 2차 세계대전중 프랑스의 한 중학교 기숙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유대인 친구와의 짧았던 우정이 어떻게 하나의 영화로서 탄생할 수 있었는지 간결하게 고백하고 있다. 홀로코스트의 비극과 광기가 휩쓸던 시대. 루이 말 자신이었던 줄리앙과 보네는 어렵게 어렵게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지만 어느날 아침 보네는 학교까지 수색작업을 한 게쉬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보네를 보호하고 있었던 신부님역시 함께 체포된다. Au revoir les enfants! 은 신부님이 게쉬타포에게 끌려가며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작별인사이다.
음악시간에 줄리앙과 보네가 연습했던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 2번은 이 영화의 메인 테마곡이다.
개학날 학교로 돌아가기위해 기차역에서 줄리앙과 엄마가 작별인사를 나누는 오프닝신, 그가 기차에 오르면서 흐르기 시작하는 이 음악은 달리는 기차를 따라 먼 유년기의 시간으로 진입하는것 같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인생의 첫 장을 향해, 최초의 기쁨과 또 최초의 균열이 기다릴 그 시간을 향해서..
* 그리고 또 한가지 피아노 선생님으로 나오는 배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후후 그렇다, 이렌 쟈콥이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이나 '레드' 를 기억하고 있다면 저 앳띤 얼굴도
낯익었을테니까. 1987년 작품이니 아마 이렌의 데뷔작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