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레닌 - 지상 최대의 거짓말! ^^
"1978년 8월 26일 독일에서 최초로 우주선이 발사되던 날 우리집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열살남짓한 소년, 알렉스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굿바이 레닌>은 재밌고
훈훈한 영화이다. 어린 알렉스와 누나가 여름별장에서 보낸 아버지와의 즐거운
한 때가 비디오테이프로 플레이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곧 이어 서
독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참가했던 아버지가 적국의 여자와 사랑에 빠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라는 아들의 멘트가 이어지면서 방향을 잡기시작한다. 사회주
의가 온전하게 실현되는 세상을 꿈구는 엄마는 충격에서 벗어나 집에서 아버지
의 자취를 모두 없애고 열혈당원으로 변신해 아이들을 정성껏 키운다. 그렇게 시
간이 흘러 10년 뒤인 1989년, 20대에 접어든 알렉스는 당시 한창 무르익어가기
시작하던 냉전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 해빙무드을 타고 동독과 서독의 자유왕래
와 서신교환등을 요구하는 반정부시위대에 참여한다. 시위대에 동참한 아들이 경
찰에 끌려가는 장면을 목격한 어머니가 충격으로 쓰러진다. 코마상태는 수개월간
지속되고 그 사이 동과 서로 나뉘어져있던 베를린 장벽이 해체되는 역사적 순간을
맞이한다. 그 이듬해 동독과 서독이 재통일되는 시기가 가까와 올 무렵 마침내 어
머니는 8개월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
문제는 코마의 원인이 심장발작이라 조그마한 충격에도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것. 그때부터 아들 알렉스의 머리가 복잡해진다. 열혈 사회주의 당원이셨던 어
머니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서구 자본주의 물결이 자기 집에도 침투했다는
걸 알게 되는날이면..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집안을 완
벽하게 통일이전의 분위기로 바꿔놓는다. 어머니가 찾는 동독제 오이피클이 생
산을 중단해서 구할 수 없자 쓰레기통을 뒤져서 간신히 라벨을 찾아 네덜란드제
오이피클에다 붙여서 깜쪽같이 속이는가 하면 어머니 생일날엔 아이들을 초정해
서 동독시절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부르던 사회주의찬양가를 불러드린다. 하지
만 알렉스의 눈물겨운 효행도 방에 TV를 설치해달라는 어머니의 요구에 거의 좌
절하다시피하는데.. 구하면 찾는다고 방송쪽에서 일하는 절친한 친구의 도움으
로 동독시절 녹화해두었던 방송테이프를 틀어주는것으로 일단 위기를 넘긴다. 한
술 더 떠서 그들은 직접 뉴스 시나리오와 멘트를 작성해서 녹화를 한 프로그램을
방송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어머니는 세상이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그럴때마다 아들은 그 상황에 맞는 또 다른 시나리오를 각색해서 뉴스시간에
내보내는 식으로 어머니의 의구심을 풀어드린다. 서독의 노동자와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동독으로 계속 이주해온다는 뉴스를 듣곤 서독난민을 위해
돕고싶다는 의사를 밝히는 어머니앞에서 더더욱 난감해지는 알렉스. 그 즈음
어릴때 떠난 후 전혀 소식을 모르던 아버지를 봤다는 누나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영화는 아들이 사랑하는 어머니를 충격에서 보호하기위해 기상천외한 거짓말을
계속 해야만 하는 상황에 촛점이 맞춰져있다. 하지만 그 에피소드들은 굉장히
감동적이고 훈훈하며 사랑스럽다. 베를린장벽 해체와 독일의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한 가족사와 인물들, 알렉스와 어머니 그리고 친구들의 시선을 통해서
사회주의가 해체되고 레닌의 동상이 철거되기는 했지만 그 세상에도 삶의 충만함
과 생활의 기쁨이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어머니역의 배우가 인상적이었는데 그녀는 아이들을 훈육하고 자신이 바라
는 사회주의 실현을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이상주의자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게 해주는 것은 그녀의 아들, 알렉스이다. 그는 어머니를 위
해 지상 최대의 거짓말을 하기에 이른다. 어차피 독일통일이 이루어진 마당에
언젠가는 어머니도 그 사실을 알게 될텐데 이왕이면 그 절차를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 합병되는것이 아니라 동독이 서독을 향해 기꺼이 문을 여는 쪽으로 각색하
기로 한 것이다. 결국 알렉스가 연출한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활짝 열어제친 사
회주의의 승리는 곧 그들이 늘 생각했고 실현되기를 바랬던 세상이 아니었을까싶다.
레닌의 흉상이 헬리콥터에 매달려 어디론가 사라진 뒤..어머니의 유골이 담긴 폭
죽이 아버지와 알렉스, 가족과 지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을 향해 우주선처럼 발
사된다. 불꽃이 된 어머니는 밤하늘에 별처럼 반짝이며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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