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낮에게
2009. 5. 16. 23:03
엄마의 진주목걸이 外..
1. 토요일 비가 온다, 하루종일.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가는 어두컴컴한 공기만 그득하다. 방 천정에 달린 원형 전등이 窓을 통해 窓 밖으로 보이는 하늘까지 반사된다. 그 모양새는 흡사 하늘 천정에 두 개의 전등이 매달려 있는 것 같다. 두터운 어둠이 배경으로 깔린 하늘에 선명한 빛으로 떠있는 둥근 모양의 전등, 너무 현실적이서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꼭 유에프오 같다! 그 순간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
2. "아무리 찾아도 없네, 도대체 그게 어디로 숨은것이냐.. 이사할 때 다른 건 다 버렸어도 그건 내 꼭 챙겨놨었는데.. " 오늘 아침 엄마가 식탁에서 한 말이다. 내용인즉 진주목걸이가 사라진 것이다.
엄마의 진주 목걸이, 그것을 나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게 어떤 진주 목걸이인지 잘 알고 있다.
오래 전 아빠가 처음으로 외국출장 나가셨을때 엄마에게 주려고 선물로 사온 것이다. 두 분이 아직은 젊은 나이였을때 였으니 함께 해 온 세월이 얼마인가. 케이스를 열면 흑단같이 보드라운 헝겁위에 정말 눈 부신 진주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진주 목걸이를 한 엄마는 정말 예뻣다. 어디서 나오겠지 하셨지만 (글쎄다, 벌써 이사하고 정리한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 ) 선뜻 잃어버렸다고 인정할 수 없는 마음과 그 물건에 대한 애착같은것이 느껴져서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 알 것 같았다. 혹여 딸래미가 나중에 거의 똑같은 진주 목걸이를 선물로 사 준다 해도 그건 아빠가 주신 것과는 같은 게 아닐테니까..
(5월 17일 일요일날 )
3. 홍상수의 영화가 곧 개봉이 된다고 한다. 제목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란다. 요 몇 년 사이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내가 그나마 알고 있는 홍상수는 '강원도의 힘'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그리고 '생활의 발견'까지의 홍상수이다. 하지만 오랫만에 제목이 끌리는 영화다. 기사를 읽으니 이 영화에 소설가 김연수씨가 나온단다. 까메오 정도가 아니라 김태우씨 친구로 바람둥이에 잘 나가는 영화감독 역이라고 하네. 한마디로 가장 "찌질한 역"이면서 장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캐릭터. 제천과 제주도가 영화의 주무대라는것 , 배우들이 거의 노개런티에 가까운 보수로 출현했다는 것도 귀에 들려온다. 이번엔 영화관에서 그(홍상수)를 만날 수 있을까?
4. 쉬는 시간에 알바를 하고 있는 사무실 옥상에 올라가 봤다. 햇빛 좋던 날 그곳에선 (놀랍게도)감자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누군가 시멘트 옥상위에 흙과 거름을 날라와 정성스럽게 감자를 키우고 있었다. 마치 옥탑방 위의 감자밭이라고나 할까, 뿌리에 열매가 열리는 감자는 지금은 모두 흙 속에 숨어있다가 감자의 시퍼런 잎파리가 누렇게 뜰 무렵 실하게 영근 감자를 캔다고 한다. 다음달 6월 중순을 넘으면 감자를 수확 할 수 있을거라고 그랬다. 세상엔 놀라운 장면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래서 세상은 살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