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글 사이 2010. 1. 24. 20:37

책일기 1 뼈모으는 소녀


지난 12월, 막 추위가 시작될 무렵 가볍게 손에 잡았던 책이다. 작가는 믹 잭슨, 원제는 'Ten Sorry Tales' 예전 포스트에서 '열 편의 짠한 이야기' 라고 소개했던 적도 있지만 실은 역자의 말대로 '"10가지 안쓰러운 이야기" 라고 말 하는 편이 더 옳겠다. '뼈모으는 소녀'는 그 열 편의 이야기중 7번째 에피소드이다.

열 편의 이야기들이  모두 조금은 기이하고 독특하다. 드라마틱한 갈등구조를 가진 story라기 보다는 동화나 옛날옛적 이야기같은 tale.  그 안으로 흐르는 우울과 신비가 섞인 묘한 분위기, 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대략그랬다.   '지하실의 보트' 에 나오는 모리스씨를 비롯해서 같은 연령대의 은퇴한 노인들이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도 은밀한 유대감 속에서 노를 젓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보다 행복한 노년기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홀로 배를 만들었던 수고로움과 고독 끝에 그들은 마침내 평온과 안식을 얻지 않았나.  하지만 기이함과 신비로움, 스릴까지 교차하면서 극적인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는 '레피 닥터' 가 단연 최고다. 나비수집가의 포충망에 걸려들어 박제가 된채 박물관에 전시된 천여마리의 나비들, 죽은 나비를 본래로 복원하는 전문가, 그것이 바로 레피 닥터이다. 그리고 레피 닥터의 운명을 스스로 자청한 소년 백스터는 고대의 주술가들이나 할 범직한 비밀스러운 입문과정을 차질없이 통과하고 아무도 해보지 않은 시술을 스스로 터득하면서 "죽음의 병을 들이마신" 천마리의 나비를 소생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부활한 나비들이 떼를 지어 날아간 곳은 바로 포충망을 들고 막 나비를 잡으려고 한 수집가의 머리위였다.  펄럭이는 천여개의 나비의 날개 사이에서 숨 쉬던 수집가의 숨은 한 순간 영원히 멈춘다.
그나저나 천마리의  나비들이 동시에 날개를 편다면 그 거대한 그림자는 어떤 모양새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뼈 모으는 소녀' 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손녀의 애뜻한 정과 사랑을 그린 이야기이다. 할아버지를 잃고 나서 기네스는 우연히 동물들의 뼈를 모으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뼈를 찾아 나서게 된다. 모아둔 뼈들 사이에 누워 한때 뼈와 살을 가지고 있던 할어버지를 다시 기억하고 떠올린다. 그리고 언제라도 그들을 불러내기 위해서 뼈들이 가장 편하게 묻힐 만한 곳에다 정성껏 묻어준다. 

그 외에도  '피어스 자매' '외계인 납치사건' '강 건너기'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은둔자 구함' '잠에 빠진 소년' '단추도둑' 등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각 에피소드에 실린 삽화들이다.  에드워드 고리와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의 분위기가 연상되는 그로테스크하고 기이한 매력! (안쓰러움은 삽화의 필치에서도 언뜻언뜻 묻어난다)  어디에선가 '레피 닥터' 가 되기 위해서 조용히 움직이는 백스터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알고 보면 우리와 그닥 다르지 않아 보이는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충분히! ^^

TEN SORRY TALES
믹 잭슨 지음. 데이비드 로버츠 그림/ 문은실 옮김/ 생각의 나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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