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글 사이 2009. 12. 7. 00:33

황인숙 '강' / 한유주 '달로'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황인숙, 「강」



 ....

만일 이 詩가 풍경이거나 사람이었다면 
단 한 마디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을 것 같다.
얼음장같이 차갑군 하면서,
하지만  구구절절 정말 그렇지 아니한가.. 하면서
당신에게 이해를 구하거나 유대감을 호소하기 보다는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는 게 정녕 옳지 않을까 싶어 지면서
그땐 정말 당신과는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강만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




한유주 소설집 「달로 」


"밤은 낮의 거대한 그림자였다. 밤은 언제나 낮이 잊혀지는 순
간에 소리 없이 잦아들었다.
더 이상 내밀할 수 없는 검은 하늘
이 모든 사물의 뒷면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낮이 되고 사물이
만들어 낸 그림자의 각도가 조금씩 달라지면 태양 아래 발각된
안식은 지친 제 몸을 애써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태양 아래
에서, 햇빛 사이에서, 아침이 오면, 먼 옛날이야기로, 아침 해
와 눈이 마주치면 먼지로 부서져버렸던 사람들처럼, 아니면 물
처럼 녹아 모래 사이로  스며들었던 사람들처럼, 혹은 사람이 아
니었던 사람들처럼, 그림자와 그림자들은 아무런 이야기도 내
뱉으려고 하지 않았다  "


<달로 14쪽>

 
.....

서사적인 이야기나 스토리 텔링과는 거리가 먼 글이다.
쉽게 몰두해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도 
모두 다 이해가 되는 글도 아니다. 
초현실주의 풍의 그림과 동화와 전설 그리고 오래된
잠언을 섞어 놓은 듯한 글들의 읖조림과 모놀로그.
그런 문체와 문장들이 견딜만하다면 그 순간부턴 오히려
술술 읽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글들엔 분명한 중독성이 있다.
말과 글의 실타래, 어디까지 풀어놓을지 모르는
어디가 시작이고 끝이 될 지 모르는 서로가 서로를 흡수하고 
반사하는 글들의 파노라마.
분명한것은 그 안에 소설이라는 통상적인 이야기는  짜여 있지 않다는 것.
독특한 소설이지만 난해하다고는 말 못하겠다. 

한유주 라는 작가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이 들었던 책이지만
이 한 작품으로 조금은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