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의 필름 2009. 9. 10. 23:54

디스이즈잉글랜드, 타인의 삶, 빵과 장미



재밌게 봤으나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면서 아픔같은것이 자리 잡는다. 1983년 영국의 초등학생 션이 열두살의 해를 지나며 커가는 성장영화라고 말 할 수 있겠다. 한편으론 그 시대가 가지고 있던 치부들, 이를테면 스킨헤드와 민족주의의 어두운 면을 표출하면서 그것이야 말로 잉글랜드의 진짜모습이었노라고 이야기한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그렇다고 아빠 없이 힘겹게 살아가는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릴 처지도 아닌 션은 어느날 동네의 형아들, 우디와 그의 패거리를 만나게 된다. 한참이나 어린 그를 우디는 호의를 가지고 받아준다. 그들과 어울리며 전쟁놀이를 하고 스킨헤드처럼 머리를 밀고 연상의 누나와 키스도 경험하면서 션은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스킨헤드족을 지향한다고는 하지만 우디의 패거리들은 스킨헤드를 하나의 패션정도로 여겼을 뿐이다. 그런데 우디의 친구인 콤보가 감옥생활을 마치고 그룹에 합세하면서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게 돌변한다. 그는 인종차별주의가 가장 현실적이라고 여기고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라면서 우디의 맴버들에게 누구를 따를것인지 선택을 강요한다. 션에겐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는 전쟁에서 전사한 아빠의 명예를 운운하며 어린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션은 아빠를 영웅이라고 하는 콤보의 곁에 남게된다. 그러나 콤보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고 급기야는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폭력과 비극을 목격하게 된다.  급류에 휩쓸려 갈 듯 하던 열두살의 그 해 여름방학.., 이제 막 빠져나온 션에게 엄마는 괜찮냐고 물어본다. 션은 고개을 끄덕인다. 그리고 혼자서 찾은 바닷가 해변, 빨강색 십자가 그려진 잉글랜드의 국기를 허공을 향해 던져버린다.



(8월 31일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관람, 백두대간의 마지막 상영작)



뜨겁게 달궈졌던 눈물샘이 마지막 장면에서 터지고야 말았던
드라이만의 소설 첫 장에 헌정된 이 문구
 
HGWXX/7
gewidmet,
in Dankbarkeit

왜 사람들이 <타인의 삶>을 이야기하는지 이제서야 알고 말았지만 영화의 첫 장면부터 엔딩 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갈때까지 정말 한 순간도 정신을 놓을 수 없었다. 흥미진진하고 재밌고 감동적이기까지하다.  아무래도 난 독일영화 팬이 되버릴 것 같다. <파니 핑크><굿바이 레닌><사랑후에 남겨진 것들>에 이어 <타인의 삶>까지..  동독의 비밀경찰 비즐러가 드라이만과 트리스타의 삶을 감시하고 도청하면서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들, 브레이트의 詩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그 시점에서 6-7년이 지난 후 자기에게 헌정한 드라이만의 소설책을 사면서 엷게 웃음짓는 장면까지, 비즐러가 살았던 '타인의 삶'은 이제 온전히 자신의 삶이 되버렸다.


(9월 4일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관람)




<칼라 송>과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에 이어 3번째로 보는 켄 로치의 영화다.  그의 영화들은 제3세계나 사회의 비주류층 사람들의 삶에 대한 성찰과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교훈적이라든가 어떤 희망을 보여주지는 않는듯 싶다. 2000년작인 <빵과 장미>역시 그 연장 선상에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영화는 담요속에 숨어서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온 마야가 언니의 도움으로 로스 엔젤레스의 환경미화원 청소부로 일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생존권(빵)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 권리(장미)에 대한 투쟁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빡빡하고 고단한 이야기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불법이민자로서 살아가지만 마야는 천성적으로 밝고 자존심이 강하며 유머감각이 있는 여성이다. 포스터의 광고문구처럼 어느날 그녀의 휴지통안으로 들어온 남자, 샘은 노동운동가인데 매우 열정적이지만 한편으론 싱거워보이는 면도 있고 솔직히 목숨을 걸고 사생결단하듯 그렇게 싸우는 스타일은 아닌듯 싶다. 그는 조직적으로 착취당하고 부당하게 대우받는 환경미화원들에게 노동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을 것을 주장하지만 선뜻 이주노동자들과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는 못한다. 시급 5달러짜리 환경미화원 자리를 뺏기면 그대로 막다른 골목으로 몰릴게 뻔한 그들과 연봉 수천달러를 받는 샘과는 사회적 괴리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마야는 그런 이유때문에 샘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면서 마야는 점점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엔젤 컴퍼니쪽에선 10여년 경력을 가진 미화원을 회유해서 주동자를 색출하려고 하지만 실패하자 그녀를 비롯한 미화원전원을 해고시킨다. 해고된 사람들과 샘 마야는 단결해서 전원복직과 의료보험을 비롯한 노조결성을 위한 시위를 시작하고 그들은 마침내 승리를 거두게 된다. 하지만 이제 모두가 희망을 걸어 볼 만하다고 생각할 그 시점에서 마야는 절도죄(친구의 대학 등록금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지른)로 검거되어 그녀가 넘어온 멕시코 국경으로 추방된다.

 

(9월 6일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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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말에서 9월 초로 이어지던 일주일은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가진 휴식기간이나 다름없었다. 여름의 끝에 찾아온 휴가처럼 친구도 만나고 보고 싶은 영화도 보고 빈둥거리면서 지냈다.  덕분에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 3편을 내리 볼 수 있었다. 이런 시간이 또 언제쯤 찾아올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