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글 사이 2009. 8. 9. 02:46

폴 오스터/ 왜 쓰는가?



Paul Auster의 자전적인 글모음집 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이 책자는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분량(총 101쪽)이다. 책의 크기는 일반판형보다 가로세로가 2센티미터 작은 판형인데 파스텔톤의 겉표지를 벗기면 작가의 캐리커쳐가 그려진 빨강색 속표지가 드러난다. 책을 꾸민 모양새는 조금 더  독특해 보인다. 일단 이 책은 접착제가 아닌 실로 꿰매어 제본하는 전통적인 사철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책을 펼치면 빨강색 가로줄이 그어진 여백안에 역시나 독특한 서체(초등학생이 또박또박 종이위에 직접 글을 쓴 것 같은 효과를 주는)가 눈에 들어온다.  모두 7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오래된 일기장안에 폴 오스터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들을 써 내려 간 듯한 분위기마져 든다. 어쨋든 책의 첫 인상은 그랬다.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목차를 보면

'뉴욕'지의 질의에 대한 답변
왜 쓰는가?
언젠가 우리 어머니한테 일어난 일이 생각난다네......
<찰스 번스타인>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25개의 문장
낱말 상자
살만 루슈디를 위한 기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에게 보내는 탄원서

글쓰는 걸 업으로 삼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스스로 묻게 되거나 질문을 받게 될 당신은 '왜 쓰는가?" 에 대한 7개의 답변이 될 수도 있겠다.  폴 오스터는 자신 혹은 타인의 삶으로 찾아든 기이한 우연과 사건 그리고 인연들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1947년생인 그가 1950년대에 유년기를 보내며 당시 평범한 미국 아이들이 그랬듯 야구에 열광하고 뉴욕 자이언트 팬이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어느날 메이저 리그 경기를 보러갔다가 그가 "누구보다도 위대하고 누구보다도 완벽하고 누구보다도 존경스러운" 선수, 윌리 메이스를 우연히 만나는 장면까지도 그랬다.감격스러움과 기쁨에 겨우 용기를 내어 "메이스 씨, 사인 좀 해주시겠어요?" 라고 말할때 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그 기막힌 순간 여덟살의 폴은 그의 사인을 받지 못한다. 하필 그는 연필이 없었고 동행한 부모님도 연필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윌리 메이스의 호주머니에도 연필은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윌리 메이스는 어둠속으로 사라졌고 어린 폴은 인생의 첫 시험에서 완벽하게 낙제하고 말았다. 어쩌겠는가? 그는 겨우 여덟살이었고 집으로 가는 동안 내내 울 수 밖에 없었다. 어쨋든 그 날 이후로 폴은 어디에나 연필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한다. 연필은 그에게 가장 큰 실망을 안겨준 장본인이지만 바로 그 연필때문에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언제 어디서든 항상 연필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남의 사인을 구하는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으므로.

"주머니에 연필이 들어 있으면, 언젠가는 그 연필을 쓰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크다. " 라고 자신의 아이들(그 아이들도 역시 야구를 좋아하고 몇몇 선수의 팬이며 메이저리그 경기를 자주 보러 가겠지?)에게 말하면서 말이다. 

앞의 4편의 글이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우연과 인연에 대한 메모리라면 '살만 루슈디를 위한 기도' 와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에게 보내는 탄원서' 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동감하고 동참하게 되는 사회적 역활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글이다. 

 


*
그런데 주머니에 늘 연필(필기구)을 가지고 다니면 그 연필을 꺼내 무엇인가를 끄적거리고 싶을 거라는 폴 오스터의 말은 거의 맞는 것 같다. 끄적거리고 싶은 마음까지는 들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무엇인가 쓸 일이 생기며 실질적으로 연필이 필요한 경우도 꽤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이어리와 펜은 다 가지고 다니지 않나. 어떤 사람들에게 다이어리는 몇 분 뒤면 허공중에 사라질 아이디어나 생각 착상들을 담아놓는 바구니이며 심심해서 끄적인 낙서들이 후일에 썩 괜찮은 글감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디지털이 일상이 된 요즘은 블로그 포스팅 하는 게 글쓰기의 범주에 들어가는 일인데 (연필이 키보드로 대체되긴 했지만) 웹상에서의 글쓰기와 아날로그적인 글쓰기의 미묘한 차이는 차치하더라도 사람들(나를 포함해서)이 블로그를 하는 이유는 뭘까? 하고 한 번쯤 묻고 싶어진다. 왜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