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글 사이 2008. 11. 15. 18:01

책읽기와 꿈




"할 일의 목록은 없었다. 그 자체로 섭리가 되는 날. 시간. 나중은 없다. 지금이 나중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 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워 마음에 꼭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고통 속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슬픔과 재 속에서의 탄생. 남자는 잠든 소년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는 네가 있는 거야
"

<THE ROAD 로드 64쪽>




꿈속에서 예전에 관람했던 영화의 장면이나 스토리가 재현된다거나

혹은 독서중인 책의 내용이 이미지로 투영되는 그런 일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막상 체험을 하게되면 왜 하필 그런 꿈을 꾼거지?
하고 좀 의아해지곤한다.


잊어버려서 그렇지 예전에도 그런 경우가 몇 번 있긴 있었다.
지금 기억나는건  꿈의 내용이
아니라 책과 영화속 대상들이 꿈이라는
스크린을 통해 자동플레이 된 적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런 상황들은 매번
아득한 느낌들,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교차로앞에 선채  신호등의 불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코멕 맥카시(Cormac MaCarthy) 소설, <로드 THE ROAD>를 읽고있다. 
150쪽을 넘겼는데  사실 진도가 그렇게 잘 나가진 않는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것은 또 아니어서
중간에 놓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
대재앙
이 지나간 이후 거의 모든 생명체가 멸종된 지구라는것과
미국의 어떤(예전엔 꽤 유명했던)도시일거라는 짐작은 가능하지만

소설속엔 핵폭팔같은 재앙의 묘사나 배경이 되는 장소에 대한 언급이없다. 
그뿐만 아니라 주인공으로 보이는 이들의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생존자인 남자와  그의 어린아들이 따뜻한 남쪽을 향해 먼 길을 떠나는 과정이
서술되어있을 뿐이다. 살아남은 난민들은  생존을 위해 사람을 잡아먹는
인간사냥꾼이 되어 있고 추위와 굶주림, 죽음의 공포와 위기를 시시각각
대면하면서 
남자(아버지)는  아들을 지키기위해 길을 재촉한다.


남자가 드문드문 떠올리는 재앙이 닥치기전의 세상에 대한 기억들은 
일종의 오버랩기능을 하지만 때론
글이 나가는 길을 멈추게도하고
퍼즐의 장면들을 맞춰야하는 수고스러움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둠이상으로 어두운" 밤과 "차가운 녹내장이 시작되어 세상을
침침하게 지워가는듯한" 낮은  그들이 걸어가는 길 위에서 지난하게 펼쳐진다.


어제 밤 늦게까지 책을 읽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나절 잠시 깨었다가
다시 잠든 사이에 꿈을 꾸었고 그것은 로드의 이미지와 너무도 흡사했다. 
나를 비롯해서 가족들과 지인들의 모습이 나타났고
배고픔과 추위대신 아픔과 질병이 지배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독수리같이 생긴 새가 내 등과 심장쪽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쪼으는것 같은 아픔이 지속되었고 고통을 호소했지만 그런 나를 어떻게 
도와 줄 수 없다는 듯 무표정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탁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기억이 희미해져버린 우울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이어졌다 .
 
등쪽에서 심장까지 박혀있는 새(독수리?) 발갈퀴의 묵직한 날카로움,
그 느낌은 너무도 생생했다. 실제로 물리적인 상흔을 당한 것 처럼 말이다.

(물론 천만 다행으로 내등과 심장주위엔 흉터하나 없이 말끔하지만 ^^;)
아침나절 내내 컨디션도 그렇고 기분도 가라앉아 있다가 오후가 지나서야
평소의 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꿈에 대한 기억도 점점 엷어져서 나중엔
아주 투명해진 것 같다.



이런 종류의 꿈은  예지몽은  아닌것 같고 다만 <로드>라는 책 속의 배경이나
분위기 내용들이 나의 어떤 부분들을 터치한 것 같긴한데 그것을 섣불리 해석
하기엔  내가 가지고있는 자료나 근거 기억들이 너무 불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투명해진 기억처럼 그렇게 잊기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