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낮에게 2009. 9. 24. 00:24

추분의 낮과 밤



햇빛이 좋은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사무실 근처를 돌아다녔다. 햇빛이 너무 강하기도 했고 시간도 많지 않아서 지하철 출구 앞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 를 슬쩍 돌아보는 정도. 늘 그렇지만 점심시간은 너무 북적거린다. 예쁜 도자기 커피잔 세트가 나와있었다. 책은 그다지 읽을 만한게 없었고.지난 봄 이사하면서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했던 것들이 많았었는데 그땐 왜 이런곳에다 기증할 생각을 못했을까싶다..  오후 시간은 바쁜중에도 지루하고 하염없이 지나가는 시간들이 너무 아깝고 애닯기만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고.. 그렇다고 일을 열성적으로 하느냐하면 그렇지도 못하고, 이래저래 요즘 내 특기는 사무실에서 멍때리기다.

어둠이 내리면 한결 마음이 놓인다. 내가 도망칠 수 있는 영역안에서 한껏 벗어 날 수 있는 시간, 비록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우울함은 개인적 성향이나 기질을 벗어나 환경과 시대가 만나는 접점에서 발생하는 증후군에 가까와졌다. 집단적 우울함같은 용어로 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밤과 낮의 길이가 똑같은 날, 오늘 하루를 그린다면 좌우가 똑같은 데칼코마니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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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낮에게 2009. 8. 28. 23:45

여름의 끝에서


오늘부터 8월 말까지 하나씩..


1.
퇴근길의 지하철 안이었다. 나는 서 있었고 언제쯤 자리가 나려나 하는 생각을 하며 무심히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내가 서 있던 자리 앞 옆에 앉아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 왔다. 놀랍게도 그 여자는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검은색 가방에서 바느질 꾸러미를 내놓고 아주 천천히 공을 들여서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여자가 열중해서 만드는 건 아기 옷이었다. 처음엔 배내옷인가 했는데 옷의 중심을 잡으려고 펼쳤을 때 보니 가운과 비슷한 겉옷 같았다. 겨우 큰 손수건 2장 정도 크기의 곰돌이 모티브가 들어간 면 가운, 여자는 아기의 목과 피부가 닿을 가장자리 부분을 안쪽으로 두 겹씩 접고 그 접힌 부분이 흩으러지지 않도록 옷 핀으로 조심스럽게 고정시킨 후 바늘에 실을 꿰어서 한 땀 한 땀 시침질을 하고 있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은 매우 천천히 이루어졌는데 여자의 바느질 솜씨가 뛰어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자태안에서 우러나오는 조용한 집중력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도 남는 것이었다. 잠시동안이었지만 바늘을 놀리는 그녀의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서너 정거장이 지나가고 여자는 바느질을 멈추더니 주섬주섬 꾸러미에 옷가지를 넣고 가방을 들고 지하철 안을 빠져 나갔다.  (8.28)


 

2.
오늘 하루종일 집에 있는 LP레코드판 목록을 정리했다. 클래식은 작곡가와 곡명 연주자와 오케스트라 레이블까지 옮기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다. 작곡가는 바하와 베토벤 모짜르트 쇼팽 슈만 슈베르트순으로 많은 것 같고 교향곡보다는 협주곡이나 실내악에 편중되어있다. 연주자중엔 피에르 푸르니에 와 정경화, 안느 소피 무터,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마르타 아르게리히,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에밀 길레스,요요마 등의 이름이 꽤 있었고 카라얀 시절의 베를린 필 하모니와 다니엘 바렌보임의 시카고 교향악단과의 협연, 보자르 트리오와 아마데우스 콰르테의 연주가 눈에 띈다. 레이블은 도이취그라모폰과 필립스, 엔젤, 데카, RCA등이 압도적이다. 나머지는  pop과 영화음악, 가요와 실내악순이다. <아마데우스><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미션><라붐>을 비롯해서 <동물원><이승환><김민기><한동준>의 앨범들, 심지어 난 이름조차 첨 들어보는 '김익호의 애수의 테너 쎅스무드'(^^;) 라는 판도 있었다. 조지 마이클이 솔로로 데뷔하기 전 활동했던 듀오,<wham>의 앨범도 보인다. 한마디로 올드한 LP컬렉션이다.  8월 한 달 주말마다 작업을 했는데 이제 오늘로서 마무리가 된 셈이다. 이렇게해서 아빠가 남긴 클래식을 비롯한 총 600여장의 레코드가 엑셀파일로 저장되었다. 비로서 한 가지 과제물을 끝냈다. (8.29)


 

3.
일요일은 늘 조금 더 늦잠을 자고 거의 아침겸 점심을 먹는다. 꿈도 가끔씩 꾸는데 오늘 아침나절엔 희안한 꿈을 꾸었다. 꿈이 완전 4차원이다. 기억나는 장면 하나를 묘사하면 이렇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긴 복도를 지나 겨우 몸 하나 빠져나갈 수 있을 듯한 창문 앞에 다다랗다. 그 곳에서 나가야하는데 다른 방도는 없고 창문에서 뛰어 내려야 한다. 완전히 네모난 유리창인데 밖을 내다보니 아득할 정도의 높이이다. 그런데 난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고 뛰어 내린다. 몸이 허공을 가르고 수직으로 떨어지는 느낌- 꿈이었지만 실제같았다- 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는데 순간 무엇인가 내 몸을 바치면서 그 안으로 안전하게 착지한다. 사람들이 커다란 방수포같은 걸 들고 날 받아 준것이다. 등으로 바쳐주는 어떤 손길이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도착한 곳은 지상이 아니라 수십미터 위에 떠 있는 어떤 도시의 내부였다. ... 3D 입체영화를 봐도 이런 느낌이 들까?  (8.30)


 

4.
8월의 마지막날, 낮에 잠시 시간을 내서 씨네큐브에 들렸다. 오늘은 이곳이 고별인사를 하는 날, 백두대간의 마지막 상영작은 <디스 이즈 잉글랜드>다. 낮 2시 25분 걸 봤다. 영화관 안은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이겠지만 마지막 자취를 담기 위해 일부러 들린 이들도 있는 듯 했다. 한 쪽에선 9월1일부터 아흐레간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리는 <큐브 베스트10 영화제>에 대한 행사가 있었고 씨네큐브 홈페이지 게시판에 고별의 아쉬움을 남긴 이들을 추첨해서 '타인의 취향' 무료상영을 하고 있었다. 한편 그동안 씨네큐브에서 상영한 영화의 필름을 통째로 갖다 놓고 마음에 드는 걸 골라서 잘라 가는 행사도 있었다. 나도 그 중 몇 장을 골라왔다. 그 중 하나가 '박쥐'에서 드라큘라가 된 상현이 맨발의 태주를 살짝 들어올려서 신발을 신키는 장면이다. 즉석에서 폰카로 몇 컷 찍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받았던 생일축하의 문자들  ^^ ;
이렇게해서 하루가 또 지나간다. 평범했지만 또 특별하기도 했던 8월 31일, 그런대로 기억에 남을 생일날이었던 것 같다. (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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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낮에게 2009. 7. 15. 00:19

폰 을 바 꾸 다



새로운 폰 모델이 출시 될때마다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려니 했고
지금 사용하는 폰을 앞으로도 1-2년은 족히 쓸 수 있으리라 장담했다.
3G폰이 머냐? 난 2G폰으로 가련다 했었다.
그런데 그게.. 핑게겸 이유는 버튼고장이다.
확인버튼뿐만 아니라 문자버튼까지 아예 (총체적으로) 작정하고 말을 안 듣는다.
(무슨 파업하는것도 아니고;;;)

이걸 바꿔야하나? 했었는데 마침 괜찮은 행사가 있어서 그냥 질러버렸다.
공짜폰(사실 공짜가 어디 있으랴만은)이고 약정은 2년,
기존 폰 해제하고 신규가입이라 가입비 3만원
그외 조건은 3개월 표준요금에 부가서비스비 몇천원.
3개월후엔 부가서비스비용 제외되고 요금도 자유롭게 선택가능.
이정도면 괜찮지 않나? 싶어서.  (뭐 더 좋은 조건도 있겠지만도)
점심먹고 사무실 옆동네 슬슬 마실다니다 얼핏 눈에 띈 L콤 대리점에서
행사 팜플렛보고 들어가 몇가지 물어본 뒤 바로 그자리에서 바꿔버렸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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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낮에게 2009. 6. 29. 21:43

6월/ 서른번의 밤과 낮


1. 지갑을 잃어버렸다. 도서관 일반열람실에서 잠깐 자리를 비웠던 사이에. 3-4분이나 될까말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지갑이 사라지고도 남을 충분한 시간이다. 지갑만 쏙 빼간 가방은 앉아있던 맞은편 자리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 날 내 자리 좌우 옆자리를 비롯해서 곳곳에 빈자리가 꽤 있었다. 추측하건데 그날 지갑을 훔친 사람은 바로 그 열람실에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자리를 뜬 걸 보자마자 일을 치른 후 자기 자리로 갔거나 유유히 사라졌거나 했겠지. 그렇다면 내가 완전히 패닉상태에서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도 보고 있었을지도. 소지품 간수를 하지 못한 내 불찰이 크지만 도서관에서 이런식으로 지갑을 뺏길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다. 말하자면 도서관이라는 장소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관이 있었던 것 같다. 거기가 보호구역이라도 되는듯. 누구나 어디에서든 도난사고를 당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도서관은 공공 시설중의 하나이고 책을 읽고 빌리는 사람들만 들락거리는 곳은 아니다. 분실신고를 했을때 담당자는 혹시 모르니 연락처를 남겨 달라고 했다. 간혹 지갑과 신분증등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게 벌써 보름전이니 돌아올 수 있는 유효기간은 이미 지난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신분증과 사진이다. 분실신고와 재발급요청을 했다해도 인터넷에서 사용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져 얼마 안되는 현금 가지시고 나머진 쓸데 없으니 조용히 폐기처분해 주기를..  


2. 최저임금을 낮춘단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삭감하겠단다. 현재의 시급 4000원에서
그 아래로 하향조정 하신단다. 4%를 깍든 0.001%를 깍든 그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다.
대한민국 사업장에서 노동자 한 사람이 하루 8시간 주5일 한달동안 꼬박 일해서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급여가 836000원인데 지금 그걸 내리겠다는 것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고용자가 피고용인을 저임금으로 부리는 착취를 막기 위해,
국가에서 정한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최소한의 임금을 말한다."

한편으로 그것은 턱없이 부족하긴해도 법으로 정해 놓은 먹고살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물리적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밥벌이하는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적어도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그 경계을 넘은 건 아니라는.
그들은 넘어서야 할 경계는 자꾸만 벽을 쌓아가면서 넘지 말아할 경계는 내놓고 월경을 할 태세다.
최저임금법은 지금 그들의 혓바닥 안에서 숫자놀음을 하고 있고
그 행태만으로도 2009년 대한민국은 또 한편의 잔혹사를 쓰고 있는 셈이다. 


3.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는 글과 그의 생전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의 음악과 그의 시대는 곧 나(우리)의 시간과도 겹쳐진다. 백만년만에 다시 보는 '빌리 진'의 MV, 이십 몇 년전의 마이클 잭슨은 그 자체로 이미 피터 팬이었다. 지구의 왠디들을 네버랜드로 초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만년의 그의 모습과 그가 남긴 말들 앞에서 드는 애잔함.  90년대 초반 크리스마스 무렵, 라디오만 켜면 줄창 흘러나왔던 Heal the world, 그 노래를 들으며 이 글에 태그를 붙인다.  
MJ, Thank you for your music..


4. 夏至가 지나갔다.
일년중 낮이 가장 긴 날, 망종과 소서 사이의 절기.
 하지를 절정으로 낮은 고양이 눈꼽만큼 짧아져 간다. 밤은 그 고양이 눈꼽만큼 길어져 가고.
 아무리 눈썰미가 좋더라도 요 며칠새 길어진 밤의 길이를 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차이를 느끼려면 적어도 서른번의 밤과 낮을 지나야 하겠지
 계절은 여름 한 복판으로 들어서고 더위는 점점 맹렬해진다.
 폭염과 폭우가 동시에 쏟아지는 도시, 살아내야 할 서른번의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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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와 공덕동



생각해보면 마포나 공덕동이라는 동네를 처음 밟아보는 건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친구의 집이 원효로 청파동 근처였는데
그 친구집에 가려면 청량리나 회기동에서 버스를 타야했다.
공덕동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던 것이며 정류장 윗쪽에 있는 육교를 건너
시장통을 지나 친구네까지 이르던 길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친구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집안사정때문에 서울생활을 접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 이후 친구의 동네는 내게서 점차 멀어져갔다.
그 곳과 멀지 않은 아현동이나 신촌, 홍대입구는 참
뻔질나게 다녔건만.

요즘 아르바이트때문에 출근하는 곳은 공덕동 옆 마포역 부근이다. 
마치  먼 길을 돌아서 예전에 소중했던 어떤 장소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그런 비슷한 감정들이 일렁거렸다.
마포대교가 코 앞에 보이는 곳에 사무실이 있다.
매일 아침 지하철역을 나오면 완만히 올라가는 대교 진입로에 자동차들이
줄지어 지나는 게 보인다. 그 뒷편이 마포대교라는 건 알지만 다리는 볼 수 없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골목길로 들어선다.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도장을 찍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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