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글 사이 2009. 3. 17. 22:50

<우리는 매일매일>- '어쩌자고'



어쩌자고


밤은 타로 카드 뒷장처럼 겹겹이 펼쳐지는지. 물위
에 달리아 꽃잎들 맴도는지. 어쩌자고 벽이 열려 있
는데 문에 자꾸 부딪히는지. 사과파이의 뜨거운 시럽
이 흐르는지. 내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지. 유리공장
에서 한 번도 켜지지 않은 전구들이 부서지는지. 어
쩌자고 젖은 빨래는 마르지 않는지. 파란 새 우는지.
널 사랑하는지. 검은 버찌나무 위의 가을로 날아가는
지. 도대체 어쩌자고 내가 시를 쓰는지. 어쩌자고 종
이를 태운 재들은 부드러운지


<우리는 매일매일> 진은영 시집 
문학과 지성 시인선 351 

 

'왜' 라고 묻지 않는다  '어쩌자고' 라는 중의적인 의문이 담긴 표현으로 말한다.
'왜' 와 '어쩌자고' 의 사이는 "겹겹이 펼쳐지는" 타로카드를 해석하는 것 만큼이나
묘한 심리적인 거리를 담고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 사이에서 어떤 '차이'가 생겨나지만
굳이 명료하게 이렇다라고 말 하고 싶지는 않은 차이,  같은 정황앞에서 '왜'라고 물었을때와  
'어쩌자고' 라고 이야기했을때 똑같은 대답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정도의 차이. 
결국 같은 의미가 될지라도 그 뜻을 풀이하는 과정은 참 다를 것이라는 정도의 차이.
........
 



*
그런데 어쩌자고 이 詩集을 읽게 된건지..

책과 글 사이 2009. 1. 31. 23:01

로마의 테라스



 설연휴동안 다시금 손에 잡았던 몇 권의 책들, 그 중에 파스칼 키냐르가 있었다.
 그는 여러권의 책을 저술했고, 그가 쓴 글들은 대부분 '소설'이라는 장르로 편입이 되곤한다.
 하지만 키냐르의 글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思惟의 성찬이라는 표현이 더 걸맞는다. 
 그의 작품안에서 조우하는 노래와 시, 詩에 가까운 산문들, 단상과 아포리즘, 풍경을 묘사한 
17세기의 소묘 한 점, 역사의 한 장면, 3인칭으로 씌여진 일기, 성찰과 고백록, 타고난 이야기꾼의 담론, 논문이나 평론의 한 구절, 글과 글 사이에 놓여진 다른 오솔길들, 은유들, ... 
그것을 모두 소설이라는 이름으로만 부르는건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곡들을  독주곡이라고 해석하는 것과 같다.

<로마의 테라스> 
   
이 소설이 어떤 이야기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키냐르는 '사랑하는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인정하지 않은  판화가의 이야기입니다.' 라고만 대답했다고한다.  인터뷰자체를 싫어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일부만 맞는 말이다. 소설의 내용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인정하지 않은 부분은 말로서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몸므라는 이름의 판화가는 목을 다쳐서 성대가 상했기때문에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내 아들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으나  그는 자신의 아들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그때문에 목숨을 잃어가면서도 사랑하는 여인을 그대로 닮은 그 젊은이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칼이 자신의 목을 긋는 순간 그는 살아있다는 환희와 솟구치는 기쁨에 온 몸을 떨었다. 그것은 말보다 어떤 인정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었다.


몸므의 이야기들, 그 한 장 한 장은 홀로 존재하는듯 서로 엮여져있다.    

  

2 0

전체가 거의 다 하얗게 보이는 드라이포인트.
빛에 잠식된 난간의 받침살들 위로 한 형상이 보인다.

나이 든 남자의 모습이다. 지그시 감은 두 눈, 흰 턱수염,
다리 사이에 들어가 있는 손, 테라스 위, 로마, 황혼녘, 하
루 중 제3의 시간. 저무는 태양의 황금빛 광휘에 휩싸여,
그는 자유로움과 살아 있다는 행복에 흠뻑 취해 있다. 포
도주와 몽상의 사이에서.


2 2

이 세상에는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지점들이 존재하오.
이런 공간들은 옛
날이 굳어진 순간들이지. 모든 것이 먼 옛날의
열정을 지
니고 그리고 집결한다오. 그것은 하느님의 얼굴이오.
인간
보다 거대하고, 자연보다 광대하며, 생명보다 활기 있는
무엇, 인간과 자연, 생명보다 먼저 존재하는 천체계(天體
系)처럼 놀라운 태초의 힘이 남긴 흔적 말이오.  

"사람은 늙어갈
수록, 자신이 통과하는 풍경의 광채에서 몸을
빼내기가 점
점 더 어려워지네. 바람과 세월에 닳고, 피로와
기쁨에 탄
력 잃은 살갗, 갖가지 체모, 눈물, 땀방울, 손톱과 머리
락, 이런 것들이 마치 낙엽이나 죽은 나뭇가지처럼 땅에
떨어져, 두툼한 살갗 외부로 점점 더 번번히 빠져나가는
영혼을 흘어지게 하지. 마지막 떠남은 사실상 흩어짐에 불
과해. 늙어갈수록 나는 내가 도처에 있음을 느끼네. 이제
내 육체 속에는 내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나는 언젠가 죽
는다는 것이 두렵네. 내 살갗이 지나치게 얇아졌고, 구멍
이 더 많이 생겼다고 느끼지. 난 혼자 중얼거리네. '언젠
가 풍경이 나를 통과하겠지. "


3 8

 .................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매혹적인 하룻밤이 있어. 저녁마다
여자들과 남자들은 잠이 들지. 그들은 마치 어둠이 추억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밤 속으로 빠져들어.
    그것은 추억이네.
    남자들은 때로 자신들이 여자들과 가까워진다고 믿
지. 그들은 여자들의 얼굴 표정을 바라보네. 그녀들의 어
깨를 감싸안으려고 팔을 뻗어. 그들은 저녁마다 상대방
의 몸을 향해 돌아누워 서로 옆구리를 맞대고 잠이 드네.
그렇다고 더 깊이 자는 것도 아닐세. 그들은 단지 밤의
노리개에 불과해. 그들을 태어나게 했고, 어디서나 무엇
에나 그림자를 드리우는 보이지 않는 장면의 노예일 따
름이야. "


Terrasse a Rome par Pascal Quignard



책과 글 사이 2009. 1. 12. 23:10

도서실. 책읽기. 그리고 무수한 茶들의 향연

 

이렇게 추운날엔 도서관 열람실은 책읽기에 가장 아늑한 장소이다. 보온과 난방이라는 측면에선 집보다 백배 낫다. 올해엔 다이어리 한 면에 읽은 책들과 읽을 책들을 적어두자 했는데  아직까지는그 약속을 즐거이 따르고 있다.   해서 지금까지 읽은 책들은:


- 김도언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
- 우석훈 <직선들의 대한민국>
- 백석詩集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모닥불>
- 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유럽의 역사 
- 그리고 <파브르의 곤충기> 중 제 2권 


쇠라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를 책표지로 선택한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은 단편소설 모음집이다.첫번째로 실린 단편이 바로 <..천변풍경>이다. 화가인 남자가 우연히 빗 속에서 만난 여자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그녀를 만나기 前의 시간과 만난 後의 시간을 삶의 生動(혹은 전력질주해서 달렸던)과 休止(이완)으로 깨닫는 과정을 사실적이면서 약간은 몽환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제 쇠라의 '그랑자트의 섬의 일요일 오후'를 보면17개의 철제계단을 올라가는 천변의 그 집에서  "따뜻한 홍합국물" 을 마시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어린 학생들의  재잘거림을 뒤로 하고 마냥 착하기만 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젊은 그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백석의 詩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놀라며 감탄하고 있다. 그의 詩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라진 언어의 寶庫이구나 싶다. 그 말 밖에는 아직.. 
 

우석훈의 <직선들의 대한민국>,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진도가 잘 나가는 책이다.
재밌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거슬렸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근거있게
진단해 주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건설과 아파트 공화국인 대한민국은 진정으로 아름답게
산다는 기준과 가치가 실종된 곳이다. 저자가 미학이라고 표현하는 삶의 기저는 그냥 이루어지는게 아니라사회 구성원들(특히 정치인과 그들의 똘만이들) 이 정말 제대로 사유하고 고민할 수 있을 때 마련 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했던 부분이었다. 우석훈은  여러권의 책을 집필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아직 할 말이  많은 사람같다. 다른 책들도 기회되면 읽어보고 싶다.


.....

 
*
옷을 껴입고도 추워서 담요를 두르고 있을 때가 많고  잘 때는 수면양말에 수면장갑에 머플러까지 하고 자니.. 이거 내가 집에서 잠을 자는건지 1박2일팀에 끼어 야외에서 자는 건지 구분이 안가고 있다 --;  이같은 날씨엔 실내온도 20도를 유지해봐야 온 몸으로 들이닥치는 냉기를 막기엔 역부족인걸 어쩌랴. 몸에선 계속 따뜻한 것만 요구하고 제일 만만한게 마시는거라 어제 오늘 마신 茶만 열댓잔은 될 것이다. 커피. 코코아. 우유. 꿀. 모과차. 유자차. 녹차. 감잎차. 우롱차. 국화차. 홍차. 쟈스민차.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수한 茶들만 디립다 마시고 있다.









 

책과 글 사이 2008. 11. 15. 18:01

책읽기와 꿈




"할 일의 목록은 없었다. 그 자체로 섭리가 되는 날. 시간. 나중은 없다. 지금이 나중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 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워 마음에 꼭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고통 속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슬픔과 재 속에서의 탄생. 남자는 잠든 소년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는 네가 있는 거야
"

<THE ROAD 로드 64쪽>




꿈속에서 예전에 관람했던 영화의 장면이나 스토리가 재현된다거나

혹은 독서중인 책의 내용이 이미지로 투영되는 그런 일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막상 체험을 하게되면 왜 하필 그런 꿈을 꾼거지?
하고 좀 의아해지곤한다.


잊어버려서 그렇지 예전에도 그런 경우가 몇 번 있긴 있었다.
지금 기억나는건  꿈의 내용이
아니라 책과 영화속 대상들이 꿈이라는
스크린을 통해 자동플레이 된 적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런 상황들은 매번
아득한 느낌들,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교차로앞에 선채  신호등의 불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코멕 맥카시(Cormac MaCarthy) 소설, <로드 THE ROAD>를 읽고있다. 
150쪽을 넘겼는데  사실 진도가 그렇게 잘 나가진 않는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것은 또 아니어서
중간에 놓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
대재앙
이 지나간 이후 거의 모든 생명체가 멸종된 지구라는것과
미국의 어떤(예전엔 꽤 유명했던)도시일거라는 짐작은 가능하지만

소설속엔 핵폭팔같은 재앙의 묘사나 배경이 되는 장소에 대한 언급이없다. 
그뿐만 아니라 주인공으로 보이는 이들의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생존자인 남자와  그의 어린아들이 따뜻한 남쪽을 향해 먼 길을 떠나는 과정이
서술되어있을 뿐이다. 살아남은 난민들은  생존을 위해 사람을 잡아먹는
인간사냥꾼이 되어 있고 추위와 굶주림, 죽음의 공포와 위기를 시시각각
대면하면서 
남자(아버지)는  아들을 지키기위해 길을 재촉한다.


남자가 드문드문 떠올리는 재앙이 닥치기전의 세상에 대한 기억들은 
일종의 오버랩기능을 하지만 때론
글이 나가는 길을 멈추게도하고
퍼즐의 장면들을 맞춰야하는 수고스러움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둠이상으로 어두운" 밤과 "차가운 녹내장이 시작되어 세상을
침침하게 지워가는듯한" 낮은  그들이 걸어가는 길 위에서 지난하게 펼쳐진다.


어제 밤 늦게까지 책을 읽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나절 잠시 깨었다가
다시 잠든 사이에 꿈을 꾸었고 그것은 로드의 이미지와 너무도 흡사했다. 
나를 비롯해서 가족들과 지인들의 모습이 나타났고
배고픔과 추위대신 아픔과 질병이 지배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독수리같이 생긴 새가 내 등과 심장쪽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쪼으는것 같은 아픔이 지속되었고 고통을 호소했지만 그런 나를 어떻게 
도와 줄 수 없다는 듯 무표정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탁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기억이 희미해져버린 우울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이어졌다 .
 
등쪽에서 심장까지 박혀있는 새(독수리?) 발갈퀴의 묵직한 날카로움,
그 느낌은 너무도 생생했다. 실제로 물리적인 상흔을 당한 것 처럼 말이다.

(물론 천만 다행으로 내등과 심장주위엔 흉터하나 없이 말끔하지만 ^^;)
아침나절 내내 컨디션도 그렇고 기분도 가라앉아 있다가 오후가 지나서야
평소의 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꿈에 대한 기억도 점점 엷어져서 나중엔
아주 투명해진 것 같다.



이런 종류의 꿈은  예지몽은  아닌것 같고 다만 <로드>라는 책 속의 배경이나
분위기 내용들이 나의 어떤 부분들을 터치한 것 같긴한데 그것을 섣불리 해석
하기엔  내가 가지고있는 자료나 근거 기억들이 너무 불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투명해진 기억처럼 그렇게 잊기로했다.